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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날짜 [ 2010년08월26일 01시07분 ]


 

며칠전 소낙비 내릴때 아들을 앉혀 놓고 막걸리를 마셨다. 집앞에 막걸리 주점이 생겨 한번 가 본 것이다. 

막걸리집에서 나오는 안주거리(부추전, 어묵, 번데기 등)로 아들녀석을 유혹(?)해 함께 동행할 수 있었다.


막걸리를 마시며 아들에게 어린시절 얘기를 들려 주었다. 어릴 때 호기심에 막걸리를 마시고 논두렁에 누워 잤던 얘길 했더니 "아빤 그때부터 술꾼이였군요" 했다.

아들은 막걸리를 손가락으로 찍어 먹어 보고는 얼굴을 찡거리며 "어른들은 이런 걸 왜 마셔요" 했다. 나는 정확한 답변을 하지 못한 채 "너도 커면 알게 될거다"라고 얼버무렸다.

아들녀석이 막걸리의 맛을 알게 될쯤 나는 또 얼마나 늙어 있을까. 그때 아들녀석도 나처럼 막걸리에 관한 추억 같은 걸 갖게 될까.

"너는 커서 아빠처럼 술을 많이 마시지 말라"는 말을 하면서도 나는 막걸리의 추억들을 회상했다.

막걸리는 대학 다닐 때 우리들 세대의 술이였다. 대학은 온통 막걸리 냄새가 풍겼다. 막걸리에 절어 있었다고 표현해도 될 만큼...

신입생 환영회,축제,동문회, 써클모임 등에서 막걸리는 빠지지 않는 단골 메뉴였다.

강제로 술을 권유하는 문화도 고착화 돼 있었지만 그동안 억눌려 온 입시경쟁에서의 해방감과 대학의 낭만 같을 것을 찾으려 했던 것 같다.


사실 그 시대 우리들은 공부을 많이 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술판 벌이는 행사가 많기도 했지만 하루가 멀다하고 연일 데모가 이어졌기 때문이였다.

때론 막걸리에 취해 독재자를 성토 하기도 했고 한 여자를 놓고 갈등을 겪기도 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갈 길을 몰라 무작정 마시기도 했다.

 

그리고 술을 이기지 못한 채 거리에 나뒹굴고 토하기도 했었다 .

무언가 풀리지 않는 답답한 세상을 막걸리로 달래려 했던 것 같다. 그렇게 막걸리는 친구였다. 그래서였는지 여기저기 술 취한 젊은이들이 많았다. 막걸리를 마시고 시험보는 간 큰 이들도 간혹 있었고 막걸리를 마시며 연애하던 이도 있었다.

막걸리와 함께 빠지지 않았던 고갈비(고등어구이) 안주도 참 많이 먹었다. 먹다가 돈이 떨어지면 기타나 학생증,시계 같은 물건을 맡기기도 했었다.

지금 세대 아이들이 생각하면 대찬 학생들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때 우리들은 늘 앞서 간 대찬 선배들의 스토리를 들으며 팍팍한 삶과 공허한 가슴을 달랬다.

 

80년대가 끝나가는 시기 1988년 서울올림픽이 열릴 때쯤 군대에 갔다 대학으로 돌아오니 막걸리판은 어느새 맥주판으로 바뀌어 있었다. 대학 분위기도 낭만은 사라지고 치열한 경쟁의 판으로 변해 있었다.(조영준의 다이어리/조영준의 스토리텔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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